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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저분한생각들

5.19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아무런 의미없이 지나쳐 보낸다.



강아지를 안고 걷는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어느 건물에서 나온 이쁜 아가씨가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아!! 102호 학생?!"
아주머니 또한 웃는 낯으로
'요즘 젊은 사람 답지 않게 싹싹하네'
생각하며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려...



"저.. 204호 사는데..."


뻘쭘함에 아주머니는 아가씨를 지나쳐
발걸음을 빨리한다.


낑낑
강아지가 울어대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주머니가
길에다 개를 내려 놓자마자
이내 실례를 하는 견공이다.

편하겠다 저놈은..
아무때나 길거리에서.
근데...
어이~ 아줌마!! 이거 않치워요??





여자가 길을 걷는다.
버스 정류장에 멈춰서서는
학교에 가는 버스가 때마침 들어오자
흰 플레어 스커트를 펄럭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에 오른다.
이럴때 응큼 바람 좀 불면 덧나나?..

핸드백을 가져다 대보지만
이상하게 삑 소리가 나질 않는다.
갸웃하고는 다시금 대보지만
역시나 기계는 조용하다.
당해본 사람만 안다.
그쪽팔림이란....

가방을 열어보니
어디서 흘렸는지
체크무늬 폴로지갑이 없다.
쌩뚱맞은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여자.

때마침 나의 바램대로 불어온 바람에
흰색 빤스마저 고스란히 드러낸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음..
여자가 우는 모습은 왠지 안쓰러우면서도
은근 섹시하다..(나 변탠가??ㅋ -.-))




길을 뛰고 있는 남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사내의 걸음은 오히려 빨라진다.
'탁'
경황이 없었던지라
길을 가던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힌다.
"아.. 씹.."
욕지기를 내뱉다가는
상대의 험악한 얼굴에
고개를 숙이는 남자.


그때
눈가에 들어오는 체크무늬 폴로지갑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갑을 열어보니
기대를 넘어서는 두둑한 현금이란!!


주위를 살피고
돈만 빼서는
슬쩍 지갑을 길에다 버린다.

하아..
지갑 주인의 사진을 보았더라면
더한걸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남자는 돈을 세느라 보지 못했다
여자가 울면서 뛰어 지나치는걸



선이 굵은 얼굴의 남자가
가뜩이나 거친 느낌인데다가
무슨 일이 있는지
인상까지 쓰고 있으니 제대로 험상궂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고
애써 울음을 찹고 있던 남자의 어깨를
때마침 치고 지나가는 한 남자
"아.. 씹.."
굵은 눈썹이 움찔하는걸 봤는지
상대는 조용히 눈을 깔고 피해간다.

걸음을 계속하려던 남자는
사과없이 지나친게 마음에 걸린다.
뒤를 돌아보니
이미 그 남자는 사라졌다.

끈적
뭔가를 밟았구나 살짝 내려다보니
신발 옆으로 삐져나온건 개똥이다.
어떤 몰상식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애완견의 똥 정도는 치워야 될꺼아냐!!!!!!!!!!!

발을 떼어 내고는
담벼락에 쓱쓱 문지르고 있는데
그 아래 체크무니 폴로 지갑이 보인다.

묻은 개똥을 털어내고
지갑을 손에 든 남자는
호기심에 지갑을 열어보지만
지갑안에 돈은 한푼도 없더랬다..




공원의 공중 화장실.
막 볼일을 보고 나온 소년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어? 지갑이네?!"
세면대 위에 놓여진 체크무늬 폴로지갑
안을 열어보니 돈은 들어있지 않다.

"와~ 이누나 디게 이쁘다"
신분증을 보니
활짝 웃는 여자의 얼굴선이 참 곱다.

괜히 버리기는 미안해서
주머니에 넣어두고 소년이 화장실을 나가자
다른 문이 열리고
선이 굵은 남자가 나온다.

"응?? 지갑이 어딨지??"
개똥 씻어내려고 세면대에 뒀는데
누가 집어갔거나 치운 모양이다.
어차피 돈도 없는 빈 지갑인데...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소년이 집에 들어와 인사를 한다.
"다녀 왔습니다"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머니.
흙투성이가 된 아들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어서 씻기부터 하라며 욕실로 내민다.

"어휴~ 또 빨아야겠네"
아들의 바지를 추스린다.
손에 잡히는 물건을 꺼내보니
흙이 묻어 있는 더러운 빈지갑이다.

"아들!! 이지갑은 뭐니??"
주은거라고 대답하는 소년의 말에
아이의 어머니는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씻고 나온 아이역시
강아지와 노느라
주웠던 지갑 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술에 취해 길을 걷던 중년.
"에이~ 그지같은 놈아~"
오늘 직장 상사에게 깨진게
한잔 술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뭔가 화풀이 대상이 없을까??

주위를 살피던 그는
이내 쓰레기 봉투를 발견하고는
힘껏 발로 찬다.

"김부장!! 너는 얼마나 잘났다고 그래?!!"
쓰레기 봉투를 겉어차는
당신보다는 잘난듯 하긴 하다만서도....

여러번의 발길질에
너덜해진 쓰레기 봉투가
끝내는 터져 길가에 쏟아진다.




날이 밝아 아침이 왔다.
강의 시간에 늦을까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던 한 청년이
길가에 어지럽혀진 쓰레기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그때.
역시나 눈에 들어오는 체크무늬 폴로지갑

지갑을 열어보니
돈은 들어있지 않지만
청년은 주인을 찾아주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돈이 들어있지 않아서
주인을 찾아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파출소에 지갑을 들고가니
의자에서 한 남자가 취해서는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중얼대며 자고 있다.

"내가 쏜다고~ 오늘 공돈이 생겼다니까~ 흠냐~"
주정뱅이 따위는 무시한채
순경에게 조심스럽게 용무를 밝힌다.
지갑을 주웠는데 주인을 찾고 싶노라고..

순경은 청년의 태도를 칭찬하며
안열 열어보고는 표정이 변한다.
마치...
돈은 어쩐거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워...원래 빈지갑이었어요!!"
좋을 일을 하고도
도망치듯 뛰쳐 나가는 청년.
세상이 다 그런거다.

"내가 쏜다니까~ 오늘 지갑을..흠냐~"
주정뱅이의 잠꼬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음..
그래서 내말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거군...


"제 지갑을 찾아 주셨다구요?"

지갑의 주인과 마주 앉은 남자
둘은 그 일을 계기로
좋은 인연을 만들기 시작했다.

흠...
부럽다...ㅠㅠ

만난지 백일이 되던날
여자는 남자에게 뭔가를 보여주며
사랑스럽게 말한다.

"이 지갑이 당신을 만나게 해줬네요"
고마운 마음에
여자는 지갑에 입을 맞춘다
그 지갑..
똥 묻었단건 알고 있을려나??


개똥이 묻었는지
쓰레기통에 들어갔는지
둘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작은 인연이 이어져
큰 사랑을 만들어가는 둘에게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함께라면 충분히 이겨낼만한 것일테니..
함께라면...

"당신은 웃는 모습이 제일 이뻐요"
한껏 큰 미소를 지어보이며
여자를 가만히 안아주는 남자
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는게 더 섹시하게 느껴지는건
필자의 욕심이리라...ㅋ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그 외의 여러 다른 모습까지도
오래도록 지켜볼 남자에게
그런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서로 함께인 지금의 시간보다
소중한것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